사회

성모마리아의 나주 성체기적 28주년 ‘또’ 기적

성모마리아의 나주 성체기적 28주년 ‘또’ 기적

 

5월 14일, 31명의 싱가폴 순례단을 필두로 홍콩, 필리핀, 캐나다 등등 9개국에서 총 100여 명이 나주에 도착했다.

 

5월 16일, 나주 성모동산에서 성체기적 28주년 기념 철야기도회가 열렸다. 이는 1991.05.16. 나주성당 미사 중에 율리아 자매가 모신 성체가 예수의 심장 살과 피로 변화된 첫 번째 성체기적을 말한다. 나주는 율리아 자매를 통한 성체기적이 33번이나 일어나 전 세계에서 일어난 성체기적을 다 합한 숫자보다 많아 대표적 성체성지로 알려졌다.

 

 

이 날 미사는 나주 사제 2명과 아프리카에서 온 사제 두 명 등 4명이 공동집전했다. 입원 중이던 율리아 자매는 외출증을 끊어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말씀을 전하러 나오자 많은 외국인들이 편안한 의자를 마다하고 앞으로 달려 나와책상 다리를 하고 경청할 정도로 열중했고, 새벽 2시가 넘어 기도회가 끝났다.


17일 오후, 싱가폴 순례단은 성모님 동산에서 “미라클! 미라클!”을 연발했다. 기적수 샘터 수도꼭지에서 하얀 젖이 콸콸 쏟아져 나왔는데 바가지에 받은 맑은 기적수가 10-15초 만에 젖으로 변화되었다 1-2분 만에 다시 맑게 바뀌는 기적이 물을 뜰 때마다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25명이 함께 목격하였다

 

그날 저녁, 이들은 나주의 모든 봉사자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장소는 나주 구도심의 미도 뷔페였다. 이들은 식사 중에 서로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체험한 은총들을 증언하고 자필 서명을 남겼다.

 

19일, 콩고의 무아까 신부도 기적수 샘터에서 이 기적을 체험하고 “기적수가 하얀 성모님의 참젖으로 변화된 것을 보았다.”고 자필 서명했다. 그런데 기적수 증언보다 더 중요한 첫 번째 성체기적 증언을 미사를 직접 집전한 사제가 4월 10일 나주에 와 증언했다. 그 증언을 요약해 보았다.

 

2019년 4월 10일 필리핀 오제리 신부님 증언

 

Q :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 1991년 5월 16일, 저는 33명 정도의 필리핀 사람들과 율리아님을 처음 만나 성체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하는 기적을 체험한 필리핀 제리 오르보스 신부입니다.

 

저는 정말 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 나주 성모님동산의 모든 곳, 심지어는 돌에서도 장미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또 프랑스 루르드 성모 성지에서 미사를 드릴 때, 극심한 고통 중에 있던 율리아님이 임신한 여성처럼 배가 불러왔어요. 제가 강복을 주고. “무슨 일이냐?” 묻자 “엄마의 자궁에서 낙태 당하는 태아들이 받는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을 위한 보속영혼으로서 그런 고통을 겪었던 건데 제가 강복을 하자 불러왔던 배가 점점 작아져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경험한 기적 중 하나였는데 1995년 율리아님이 필리핀에 오셨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바콜로드 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에 갔습니다. 다음날,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갑자기 태풍이 불자 모두 “지금은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율리아님은 “가야만 한다.”면서 큰 배도 아닌 타고 온 작은 보트의 뱃머리에 서서 두 손을 높이 활짝 펼치고 계속 기도했는데 육지로 다가갈수록 먹구름이 걷혔고, 항구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하였습니다.

 

율리아님의 믿음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보속영혼인 율리아님은 고통을 많이 받는다는 걸 잘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말하고 판단하는 것들로 인한 고통… 저는 율리아님이 모두에게 얼마나 겸손한지를 봅니다. 그녀는 늘 사제들에게 유익한 것을 더 많이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그것은 바로 성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Q : 작년, 율리아님 필리핀에 갔을 때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A : 작년에 저는 암으로 폐 위 쪽을 제거해야 했는데 율리아님이 저를 위해 오신다는 전화가 왔어요. 근데 고통이 너무 극심해 산소통을 갖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해서 “그건 너무 무리다. 난 괜찮으니 오실 필요 없다.”고 했지만 자매님의 그 사랑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습니다.

 

자매님은 기어코 병원까지 오셔서 저에게 ‘성모님의 사랑으로 치유 받을 것’을 확신시켜주면서 기도해주셨습니다. 제가 뭔데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지 모르지만 율리아님이 주는 사랑은 성모님의 사랑입니다.

 

율리아님은 수술 날인 다음 날 병원에 또 방문해 제가 수술하러 들어가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때까지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율리아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심지어 자신이 받는 극심한 고통들조차 기뻐합니다. 이것은 제 경험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것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율리아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겸손과 기쁨과 감사로 점철된 ‘작은 자(者)’의 길을…

 

Q : 수술 전 마마 쥴리아의 기도를 받고 난 후 치유 받으셨나요?

 

A: 맞습니다. 저는 수술을 세 군데나 해야 했는데 율리아님의 기도로 치유됨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율리아님은 제가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희망을 갖게 됐는데 그날 수술을 집도한 안토니오 라모스 박사와 바바람 박사도 “성모님,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기도하고 수술을 시작했답니다.

 

안토니오 박사는 수술 중에도 ‘성모님, 저를 도와주시면 앞으로 매일 묵주기도 바치겠습니다.’ 기도했답니다.(두 의사가 성모님께 매달릴 정도로 제리 오르보스 신부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던 것임.) 저는 성모님께 “제가 나으면 가장 먼저 성모님께 감사드리러 나주에 가겠습니다.” 약속했는데 율리아님은 제 치유를 위해 무리를 감행하며 직접 저를 찾아와 성모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Q : 율리아님을 통해 목격하신 성체기적 당시 상황은?

 

A : 1991년 5월 16일, 성체가 피로 변화되는 첫 번째 성체기적은 저와 산토스 신부님이 처음 목격했어요. 그때 저는 ‘혀를 깨문 건가? 뭔 일이 일어났지?’ 하다가 ‘오! 마이 갓! 이것은 기적이다!’ 하면서 그동안 아무 감사도 없이 성체를 모셔왔던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리고 감실 앞에 무릎을 꿇자 어니스트 신부님도 무릎을 꿇었고, 저는 “주님, 당신은 성체 안에 참으로 현존해 계십니다. 우리는 그 가치와 감사함을 잊고 성체를 너무나 당연하게 습관적으로 영했으니 용서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습니다. 율리아님은 영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사 때 제리 신부님 뒤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예수님 피가 성작으로 내려오시는 것을 봤어요. 또 성모님께서 특별히 신부님과 어니스트 신부님을 안아주셨어요.” 성모님은 모든 이를 다 안아주지만, 특별히 사제들을 더 안아주신다는 말씀에 너무 감동했는데 저는 성모님께서 단지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제가 더 회개할 수 있도록 계속 오시길 바랍니다.

 

Q. 미사 때 성작에 갑자기 나타난 파리 세 마리는?

 

A : 나주 순례 3개월 후인 8월쯤, 필리핀 바탕가스의 리파에서 봉헌한 미사에서 성체 축성 후, “예수께서는 저녁을 마치시고 잔을 들어…” 하면서 성작 덮개를 열어 올리는 순간 성작 안에 파리 세 마리가 있어 충격을 받았어요. 예전 같으면 ‘파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지?’ 하고 꺼내서 버렸을 겁니다. 그래도 아무도 모를 것이고요.

 

그때 주님께서 “제리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는 내 피임을 믿느냐?” 말씀하시는 것 같아 “예,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니다.” 했지만 사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성체를 영한 저는 성작을 들고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피임을 믿습니다.” 하면서 세 마리 파리와 함께 성혈을 마셨습니다. 그것은 성체께 대한 제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기회였습니다.

 

제리 신부는 그 성혈을 마시자마자 장미향기가 진동했는데 율리아 자매는 “주님께서 신부님의 믿음과 사랑을 시험하신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파리 세 마리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라고 알려줬다 한다. 제리 신부는 인터뷰를 마치며 율리아 자매에 대해 “저는 당신을 통해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모성적이며 조건 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제 사제직에 있어 당신의 존재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만날 천국에는 더 이상 고통도 없고, 박해도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나주 봉사자인 김동명 알비노씨는 “신부님이 말한 박해는 중첩된 의미가 있다. 첫 째는 광주교구가 제대로 된 조사 없이 나주의 기적들을 다 부정하는 박해고, 두 번째는 제리 신부님이 속한 수도회에 대한 박해이다. 광주교구는 이 성체기적 확산을 막기 위해 제리 신부님이 나주에 순례하면 광주교구에 진출한 그 수도회의 선교활동을 못 하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신부님은 수도회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나주에 안 왔는데 작년에 폐암등 세가지암으로 죽음이 코앞에 왔는데 율리아님의 보속고통과 기도로 살아나셨다. 이 일을 계기로 신부님은 ‘예수님께선 내가 체험한 성체기적과 나주성모님을 전하기를 원하시는 구나.’ 느끼고 지난 4월에 나주에 다시 순례 와 인터뷰에 응하셨다.”라고 얘기한다.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기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교황을 정점으로 완전한 일치를 추구하는 가톨릭교회’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이다. 그렇지만 이번 성체기적 기념일 전후에 성모동산 등에서 일어난 현상들을 보면 나주의 기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정리: 전호남 기자